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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마리앙투아네트와 김건희 여사의 진실

by 텔미 2024. 1. 24.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최후로 생을 마감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인물인데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희대의 악녀로 알려져 있는데요. 역사적 사실과 이번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의 진실까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문의 군주의 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고 하프연주를 잘했던 착하고 평범한 오스트리아의 공주였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에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그렇게 하여 마리 앙투아네뜨가 14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와는 오랜 적국 관계였던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로 간 후 많은 어려움과 루머에 시달렸는데요. 그 시절 프랑스 왕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왕실에서는 방만한 경영과 호화스런운 사치를 일삼았는데요.

 

이런 국민들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 7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왕실에 대한 반감이 왕비에게 화살이 돌아가면서 국민들이 루머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비가 왕에게 만족하지 못해 매일밤 다른 남자들과 파티를 벌인다. 동성애자라는 악질루머에 시달렸는데요. 이런 소문은 그림과 함께 사실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결혼 7년 만에 2세를 출산하고 상황이 조금 나아졌는데요. 그런데 이때 다이아목걸이의 사전이 터지게 됩니다. 

 

647개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 647개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목걸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1772년 루이 15세(왕)는 자신이 아끼던 정부(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상급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였고 보석상은 루이 15세를 위해 647개의 최상급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목걸이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2백만 리브르(한화 약 200억 원)의 천문학적 가격의 목걸이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목걸이를 주문한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려 갑자기 사망을 하게 됩니다. 루이 15세가 사망 후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인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4명의 아이들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

 

 

전재산을 투자해서 다이아목걸이 만들었던 보석상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대신 목걸이 구매 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살 돈이 있다면 군함 한 척이라도 더 사겠다는 말로 단칼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때 추기경이었던 [드 로앙 추기경]은 성직자 신분으로 부정부패와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으로 왕실에 잘 보여 호위호식을 하려는 생각만 가득한 사람이었는데요. 이런 [드 로앙 추기경]을 마리 앙투아네트는 좋지 않게 보고 있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아 초조해하던 [드 로앙추기경]에게 한 여인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측근이라 속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대신 구매하여 환심을 사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 여인은 마리 앙투아네트 자필서명을 위조하여 계약금만 지불된 채 여인에게 전달이 되었는데요. 당연히 이 여인은 다이아목걸이 가지고 사라졌죠. 

 

재판을 통해 이 여인의 사기극이 밝혀졌는데요. 이 소식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목걸이를 가지고 싶어 이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 천문학적 다이아목걸이가 불씨가 되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요구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열망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목걸이를 가로챈 여인은 프랑스 혁명군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전달하였고 자신한테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이 소식에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다 달랐습니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다

 

결국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는 재판소에 끌려오게 되었고 그녀의 혐의는 아주 다양하였습니다.

 

사치로 국고 낭비, 부정부패, 적국과 내통한 혐의, 심지어 8살 난 자신의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등 온갖 죄목을 씌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혐의로 증거나 뚜렷한 정황도 없었는데요. 

 

당시 혁명정부에게 지독하게 학대를 받았던 그녀의 아들인 루이 17세는 학대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게 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형선고를 받아 이틀 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나요?

 

마이 앙투아네트 하면 떠오르는 말인데요. 실제 마이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다른 왕족에 비해 상당히 검소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김건희여사와 마리 앙투아네트

 

이번 디올 명품백의혹에 대해 김경률 위원이 김건희 여사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유하면서 국민정서와 맞지 않다는 말을 하였는데요. 김경률 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말한 것일까요?

 

알고 얘기했다면 천재인데 그럴 확률은 제로인 듯 보이며 사실상 그녀의 왜곡된 역사적인 사실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이니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김건희 여사에게는 치명적인 실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김건희여사는 진실은 항상 거짓을 이긴다는 생각으로 크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선기간에 나왔던 줄리 의혹이 너무 터무니없는 의혹이라 처음부터 대응하지 않았던 게 잘못이었을까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 많은 집 외동딸을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의심을 하고 한 회사의 CEO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사람이 밤에 유흥업에 종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를 사실인 양 공작을 하는 좌파 유튜버나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상식과 양심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요?

 

[서울의 소리]라는 유튜버는 지금껏 말도 안되는 의혹제기로 단 한 번도 팩트가 없는 의혹만 제기하였습니다. 김의겸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서울의 소리의 의혹 제기부터 시작이 되었고 줄리 의혹은 80세가 넘은 과대망상증의 노인의 거짓 진술을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인데요. 줄리라는 이름도 김건희 여사의 모친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말을 하여 좌파 매체인 김어준조차 쉴드가 불가한 상태였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반대중은 "명품백"을 받았다더라!! 사치를 한다더라!!로 김건희여사를 오해하지 않을까요? 사건의 전말[서울의 소리의 몰카공작]을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그저 명품백을 받았다더라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누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는지 알아보려는 노력까지 할려고 할까 의문이 듭니다. 재판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는 모든 걸 포기하고 혐의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다만 자신의 아들과 근친상간혐의에 대해서는 자식을 가진 부모로써 관중들에게 묻고 싶다고 부모가 자식한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관중석에 있던 어머님들은 마리 앙투아네뜨의 말에 다들 동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명품백을 받은 건 잘못이다?

 

몰카로 자신을 궁지에 빠뜨리려고 작정하고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묻고 싶네요. 선물이 10만 원짜리인지 3백만 원짜리인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구든 선물하는 상대의 성의를 생각해 단칼에 거절하기 힘듭니다. 거기다 부모님과 친분이 있었던 그것도 목사라는 분이 이런 몰카공작을 할 거라고 단 1%도 예상을 못했을 겁니다.

 

왜 영부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저질 의혹과 공작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요?

누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돌을 던질수가 있을까요? 물론 왕비로써 일반 국민에 비해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을겁니다. 그 당시 국민들은 굶주림에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였을 겁니다.

 

원래부터 60억대 부자였던 김건희 여사가 미모,학력, 명예까지 다 가져 미울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부인이라서 국민의 알권리, 비판할 권리만을 내세워 인격모독과 같은 이런 악질적인 만행을 참아야 한다. 여러분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김건희여사가 평범한 집의 가정주부였다면 일반인이었다면 아마도 좋지 않은 생각도 할 수 있을만한 모욕적인 억측과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700년대 프랑스국민들이 누군가 원망이 대상이 필요하여 왕비를 악녀로 둔갑시켰듯 200년이나 지난 지금,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최첨단 시대에도 이런 무지몽매한 역사는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왜 가난한 집의 왕따는 불쌍히 여기면서 직장내 성추행만 당해도 그 가해자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생각하면서 김건희여사는 그보다 더한 조리돌림 수준의 취급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게 전후사정 맥락없이 무조건 사과를 할 일인가요? 

 

역사는 승자독식이라 프랑스혁명이 실패를 하였다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아마 바뀌었을 겁니다.

혁명군이 승리를 하였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재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가 왜곡되어 2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수의 의견이 아닌 소수의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말로 대중을 속이고 다수의 말도 이런 사실이 진짜 사실인지 한 번 두 번 더 생각해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정말 씁쓸할 뿐입니다.